한의학의 음양론적 인체관과 음양개념의 은유적 이해

Understanding the Yin-Yang Doctrine of Korean Medicine As a Metaphor

  • 이충열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생리학교실)
  • Lee, Choong Yeol (Department of Physiology, College of Korean Medicine, Gachon University)
  • 투고 : 2014.08.18
  • 심사 : 2014.10.07
  • 발행 : 2014.10.25

초록

In Korean Medicine (KM), the Yin-Yang doctrine is still used as a theoretical tool for understanding and explaining the clinical experiences. However, as the traditional culture declined in East Asia and the scientific culture took over, there was an increased negative view on the Yin-Yang doctrine, and thus a heightened distrust over KM. For KM to survive in an unfamiliar culture of science, a novel outlook on the Yin-Yang doctrine is needed. In this sense, I consider a thoroughly medical take on the Yin-Yang doctrine to be most important. The focus needs to be on the goals of medicine: this includes riddance of any discourses on Yin-Yang that cannot contribute to the goals, and an enhancement of the Yin-Yang concept as a rational and scientific terminology. One way to achieve this is by understanding Yin-Yang as a type of metaphor. The Yin-Yang doctrine that is utilized in KM corresponds well to the conceptual metaphor suggested by Lakoff and Johnson. As a metaphor, the Yin-Yang concept plays a role in structuring the target domain, that is life phenomena, metaphorically. Through the Yin-Yang metaphors, the life phenomena are understood as the Yin-Yang phenomena, and are systematically organized by the subcategories contained in the Yin-Yang doctrine. Understanding Yin-Yang as a metaphor is a good way to enhance the Yin-Yang concept and doctrine as a rational terminology and method.

키워드

서 론

음양과 오행은 전통시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사물과 현상의 변화를 개괄하고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던 핵심적인 개념들이었다. 음양과 오행 모두 최초에는 자연계 속의 단순하고 구체적인 사물이나 현상과 관련된 용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의미들이 이로부터 引伸되고 또 추상되었으며, 漢代에는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는 철학적 개념으로까지 승화되었다. 본래 음양과 오행은 별개의 개념이었으나 鄒衍에게서 음양과 오행의 결합이 시도되고, 漢代 董仲舒에 이르러서는 음양과 오행이 보다 긴밀하게 결합하여 우주론과 천인관계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 된다.1) 이렇게 발전된 음양과 오행은 ≪黃帝內經≫에 잘 나타나있듯이 한의학에도 도입되어 한의학의 이론적 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그러나 근대 초기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서구식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과학주의(scientism)가 유행하고 이로 인해 전통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음양오행설이 지식인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는 “음양오행설은 이천 년 동안 온갖 미신을 낳은 본거지(大本營)였다”2)라고까지 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지금은 과학문화가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동아시아의 전통문화는 이미 쇠퇴하여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이 자리를 서양의 과학적 세계관, 문화, 사고방식이 채우고 있다. 음양오행설은 이제 실생활에서는 완전히 도태되어 철학, 종교 등 사변적인 분야에서만 남아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한의학 분야에서는 여전히 음양오행을 이론과 임상에서 경험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寒熱, 燥濕, 表裏, 氣血, 營衛, 虛實과 같은 음양적 개념들은 한의학 임상에서 의미 있게 활용되고 있으며 한의학 임상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의학은 종종 비판을 받고 있다. 한의계 내부에서도 간혹 음양오행을 한의학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떤 돌파구가 있을까? 음양오행설은 전통문화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의학 또한 전통문화와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면서 음양오행설을 지금처럼 유지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앞으로 한의학은 점점 더 과학문화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외딴 섬처럼 고립되고 말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한의학을 과학문화에 적합한 과학적 의학으로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음양오행에 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는 음양오행을 철저하게 의학적 방법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음양과 오행 중 음양론에 초점을 맞추고 음양론을 의학적 방법으로 보는 관점에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한의학의 음양론적 인체관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음양론이 방법적인 측면에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음양론적 인체관에 적용되고 있는 음양개념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모색해보려고 한다. 필자는 음양을 은유로 이해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검토해 볼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현대 한의학3)의 입장에서, 그리고 한의학에 적용되고 있는 음양론을 반성적으로 살펴보는 의철학4)의 관점에서 모든 논의를 전개하려고 한다.

 

본 론

1. 현대 한의학에서 음양론의 바람직한 위상과 역할

≪黃帝內經≫ 이래로 한의학에서는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의학이론을 수립하고 이를 통해 임상에서의 진단과 치료 과정을 설명해 왔다. 음양오행설이 전통시대 동아시아 학문과 사상 전체를 지배했던 학설이었기에 한의학에 적용되었던 음양오행설도 한의학 외부의 음양오행설의 발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의학 외부에서 음양오행과 관련된 새로운 담론이 출현하면 이것은 어김없이 한의학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 주요 개념과 이론들이 한의학으로 들어와 한의학 이론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運氣論, 太極圖說, 周易 圖象學派의 象數易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것들은 한의학에서 醫易學, 君火相火論, 命門學說 등의 이론이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음양과 오행, 氣와 같이 한의학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용어들은 동아시아인들의 세계관, 문화 또 그들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며, 더 나아가 동아시아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을 담보하고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중요한 언어적 수단이었다.

그러나 과학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음양론에 대한 시각은 이전처럼 우호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음양론을 활용하고 있는 한의학의 신뢰도도 함께 저하하고 있다. 한의학의 현대화, 과학화가 가속될수록 한의학에서 음양론을 배제해야 한다는 압력은 비례하여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의학은 지금 동아시아 전통문화와 과학문화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야만 하는 선택의 상황을 맞고 있고, 음양론에 대해서도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결정해야하는 기로에 서있다.

이미 한국사회 전체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과학문화를 전통문화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의학은 문화재가 아니며 지금도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의학이고 의료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음양론을 전통문화와 함께 폐기하든지 아니면 음양론을 재평가하여 과학문화에 맞는 새로운 위치와 역할을 부여하든지 밖에 없다. 한의학 이론과 임상에서 지금도 여전히 음양론이 의미 있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음양론을 재평가하여 의미 있는 것은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필요 없는 군더더기는 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음양론을 철저하게 의학적 방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학적 방법이란 의학이 지향하는 목표에 효과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들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5) 방법은 크게 인식방법과 행위(실천)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음양론은 실천행위의 기초가 되는 인식방법에 속한다.

음양론을 의학적 방법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한의학의 실천적 목표인 양생을 통한 건강유지와 질병의 예방, 그리고 질병의 치료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음양론을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음양론은 인체와 인체가 나타내는 생리현상 및 질병현상을 인식하는 방법이 되고, 한의학에서는 음양론을 통해 양생, 예방, 질병치료라는 목표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첫째, 한의학과 결부되어 있던 신비주의적이고 玄學的 음양담론들이 정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음양론을 철저하게 의학의 목표에 종사하는 방법으로 규정하면 한의학에서 실제 활용되는 음양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넓고 심오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현대 한의학에서는 더욱 더 제한된 내용만을 필요로 한다. 윤길영(1912~1987)은 한의학에 적용되는 음양을 “1.陰陽代謝의 兩勢力을 지칭하는 음양, 2.상대적으로 지칭하는 음양, 3.經絡의 음양, 4.部域의 음양, 5.生命源의 음양”6)으로 요약하기도 했다. 현대적, 과학적 한의학을 추구했던 윤길영은 일부 한의사들이 음양을 지나치게 넓고, 관념적으로 이해하여7) 한의학 자체를 사변적인 학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을 비판했다. 윤길영의 견해에 따르자면 한의학에서 필요로 하는 음양의 내용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론의 역할을 의학적 방법으로 한정한다면 한의학과 결부되어 있었던 음양과 관련된 필요 없는 담론들을 정리할 수 있다.

둘째는, 기존에 형성되어 있었던 음양론과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관계를 일정 부분 정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적 방법은 외부적 권위에 의존하거나 호소함이 없이 그 자체 방법적으로 내적 완결성과 합리성,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음양론의 배후를 형성했던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세계관, 사고방식, 문화는 의철학 영역에서는 충분히 다루어질 수 있지만 의학 속에는 더 이상 들어와서는 안 된다. 의학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의미가 있는 내용들은 의학적 방법 속에 포함시켜 대상관(인체관)이나 인체현상을 파악하고 설명하는 논리적 방법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자체로 내적 정합성과 완결성을 갖춘 방법이 되어야 한다. 음양론적 대상관(인체관)과 논리적 방법은 합리성을 갖추어야 하고, 또 기존의 다른 의학체계가 보지 못하는 것을 포착하거나 예측하는 등 방법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가 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할 때에만 음양론은 과학문화 속에서도 의미 있는 의학적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음양적 사고의 특징-음양상응체계와 상관적 사고

음양론에는 동아시아인들의 세계관과,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독특한 사고방식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므로 의학적 방법으로서 음양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세계관8)

전통시대 동아시아인들은 이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서양과는 다른 종류의 세계관을 형성했다. 이 세계관은 全一觀, 恒動觀, 調和 또는 平衡觀 같은 것으로 요약된다.

동아시아인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속해있는 이 세계가 일종의 거대한 유기체라고 인식했다. 세계 속에는 서로 이질적인 다양한 사물과 현상들이 섞여있지만 이 세계는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에 속해 있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9) ‘全一’10)은 이러한 세계의 전체성, 통일성을 표현하는 용어다. ‘全一’ 개념은 크게는 이 세계 전체에 적용되어 천지간의 모든 변화를 낳는 일원적 본체를 표현하는 개념이 되지만, 작게는 하나의 개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全一’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이 사물에 대한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를 全一觀이라 한다.11) 즉, 全一觀은 전체성, 통일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동아시아인들은 이 세계의 전체성과 통일성, 유기성을 중시하는 관점 속에서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각 사물과 현상이 갖는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세계를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動而不息) 동적인 세계로 인식했다. 그들은 서양에서처럼 이 세계 밖에서 변하지 않는 존재나 초월적 절대자를 찾지 않았으며, 현실세계 그 자체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생성의 세계를 그들의 유일한 세계로 받아들였다. 恒動觀은 현실세계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고 움직이는 동적인 세계라는 관점에서 사물과 현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12) 동아시아에서는 변화 그 자체를 중시하고 또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모든 사물과 현상을 보았다. 이런 역동적이고 생성하는 세계를 묘사하고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氣’라는 개념을 고안해 내었다. ‘氣’개념을 통해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氣의 변화(氣化) 현상이 되었고, 이것을 生化極變, 升降出入의 규율로 요약했으며,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氣로 이루어 졌다는 사상으로 진화했다. 기 개념을 통해 그들은 이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동적이고, 생성적 세계라는 관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그들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과 현상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세계 속에 질서가 있고, 조화와 평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調和와 平衡觀). 이 세계는 서로 이질적인 존재자들이 공존하고 있으면서도 충돌하지 않고, 각 존재자들에게 주어진 발생(生), 성장(長), 성숙(壯), 노쇠(老), 소멸(已,死)이라는 각자의 주기를 실현하면서도 우주 전체가 실현하는 주기에 의존하여 반응한다. 동아시아인들의 시간 개념은 순환적 시간관으로서 계절을 통해 나타나는 자연의 변화나 천체의 규칙적인 운동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적어도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우주의 진보라는 직선적인 시간개념이 결여되어 있었다.13)

이같은 동아시아인들의 세계관은 음양론적 사고방식의 기초가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음양론적 사고방식 속에 이러한 독특한 세계관이 녹아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2) 전통시대 동아시아인들이 세계를 인식했던 방법(1)-상관적사고

상관적 사고(correlative thinking)14)는 서양 학자들이 서양의 인과적 사고, 분석적 사고와 대비하여 동아시아인들의 독특한 사고방식에 붙인 이름이다. 상관적 사고는 漢代 董仲舒에 의해 확립되었다고 보고 있는 상관적 우주론(correlative cosmology)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전통시대 동아시아인들은 이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이며 전체로서 질서가 유지되고 있고 영원히 순환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우주를 구성하는 인간, 자연, 사물들은 전체 우주의 변화와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들로 규정지었다. 또 이들 사이의 관계는 인과율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고, 또 종적인 관계도 아니라고 인식했다. 사물들은 패턴 속에 나란히 놓여지며 同類相動, 同氣相感의 감응에 의해 서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15)

헨더슨은 중국 고대에 형성된 상관적 사고를 다음 네 가지 양식으로 정리했다. 첫째는, 인간과 우주, 즉 소우주와 대우주 사이의 감응(인간과 우주-天人相應), 둘째, 니담이 국가 類比(state analogy)라고 불렀던 코스모스 영역인 하늘과 지상의 영역인 왕조 또는 국가 관료체제 사이의 감응(우주와 국가), 셋째, 오행과 같은 數秘學的 相關의 체계, 넷째, ≪周易≫과 그 부록인 <十翼>에 제시된 易의 체계이다.16) 그리고 이 상관적 사고의 네 가지 근본 양식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우주, 국가-우주의 상관적 감응체계는 종종 오행과 연관되었고, 또 오행체계는 易의 형상에 기반을 둔 상관적 체계와 결합하기도 했다고 했다.17)

예를 들어 한의학의 ≪黃帝內經≫에는 일관되게 우주론적 질병관이 나타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몸 안의 氣와 몸 밖의 氣 사이에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며, 우리 몸이 계절의 순환과 같은 우주적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면 질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18) 즉,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양생하는 것에 실패하거나, 바르지 못한 계절의 기운(不正四時之氣)이 우리 몸을 침범하여 조화를 깨뜨리면 질병이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서양의 실체론적 질병관과 대비하여 전형적인 동적 질병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19) 각 계절의 변화가 주로 음양기의 升降이나 運氣論(五運六氣)의 틀 속에서 설명되었으므로, 이 틀에 맞추기 위해 인체의 장기, 조직, 현상들이 음양, 오행, 육기의 틀 속으로 분류되었고, 또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과 음식(곡식, 과일, 가축 등)들도 모두 음양, 오행, 육기의 체계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인체 생리현상, 질병의 발생, 진단, 치료를 모두 이런 음양, 오행, 육기적 상응 관계의 체계 속에서 설명했다.

그레이엄(A. C. Graham)은 소쉬르(F. Saussure)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계열체(paradigm)/연속체(syntagm)의 관계 개념을 빌려와 음양과 오행 체계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상관적 사고를 언어학적 측면에서 설명했다.20) 언어적 사고(verbal thinking)는 계열체들의 축적된 목록에 의존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계열체들은 가장 단순하게는 이항적 대립들(음양)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대립항들은 사슬처럼 연결되어 연속체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낮/밤, 해/달, 빛/어둠, 지식/무지, 선/악의 이항 대립들 각각은 계열체들이다. 또 이 이항적 대립들에서 낮/해/빛/지식/선, 밤/달/어둠/무지/악은 각각 서로 사슬 형태로 연결되어 연속체를 이루고 있다. 이같은 계열체와 연속체를 이용한 언어적 사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지식의 빛’, ‘악의 어둠’ 같은 문구들이다.21) 그레이엄은 이같은 상관적 사고가 음양, 오행의 상응체계를 이용한 고대 동아시아인들의 사고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난다고 본 것이다.

Table 1.The Yin-Yang System on CH’I as the Paradigm/Syntagm relationship22)

그레이엄은 이 표의 음양 상응체계를 이용하여 다양한 진술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였다.

예를 들어 1,2번을 이용하면 ‘맑고 가벼운 것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것은 땅이 된다.’, 5,6번을 이용하면 ‘해는 불의 순수한 氣이고, 달은 물의 순수한 氣이다.’, 5,15번을 이용하면 ‘불은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내려간다’ 등이다. 이 예들은 고대 동아시아인들의 상관적 사고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23)

또 ≪淮南子·天文訓≫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위의 음양상응체계를 통한 상관적 사고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 ‘불은 위로 타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흐른다. 그러므로 새는 날아서 높이 올라가고 물고기는 움직여서 아래로 내려간다.’24)에 대해 그레이엄은 “불이 물과 다른 것 같이 새와 물고기는 다르다. 물고기가 물을 닮은 것 같이 새는 불과 닮았다.(5,13번) 어떤 점에서 그런가? 새들은 불처럼 빛과 연결되고,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는 가벼운 기와 연결된다. 물고기는 물처럼 어둠과 연결되고, 아래로 가라앉아 땅이 되는 두터운 기와 연결된다.(1,2,8번) 이 논증은 직접적으로 맨 마지막(15번)으로 이어지며, 다시 불과 물의 지배 또는 그것들의 진수인 해와 달의 지배로 상정된다.”25)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상관적 사고는 전통시대 동아시아인들의 특징적인 사유 형태였다. 상관적 사고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많은 사람들이 상관적 사고를 분석적 사고가 나타나기 이전의 비합리적, 미신적 사고로 본다. 하지만 그레이엄은, 분석적 사고도 실상은 상관적 사고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음양론은 서양과 달리 적극적으로 상관적 사고가 외현화되어 있는 거의 유일한 체계라고 보고 있다.26) 상관적 사고에는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옥석을 가려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 될 것이다.

3) 전통시대 동아시아인들이 세계를 인식했던 방법(2)-분류와 패턴인식

동아시아인들은 상관적 사고에 기반하여 분류, 패턴인식, 감응, 유비와 같은 이 세계에 대한 특징적인 인식방법들을 발전시켰다. 이런 인식방법들은 상관적 사고가 전개될 수 있는 기초를 형성한다.

이 중 분류는 세계의 현상적인 다양성을 다양성 그대로 인식하면서도 세계를 체계적으로 파악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이었다.27) 물론 서양에서도 분류가 발전되었지만 동아시아의 분류는 서양과 비교할 때 다른 특징이 있었다. 분류란 同類 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인데 동아시아에서의 同類 개념은 내포적이 아니고 외연적으로 정의되었다. 즉, 서양에서의 분류가 개체가 가진 내포적 속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동아시아에서의 분류는 사물과 사물 사이의 외연적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28) 그리고 실천 지향의 記述的 사고와 枚擧的 記述을 특징으로 한다.29) 음양상응체계와 오행귀류는 이런 분류의 중요한 사례 중 하나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음양과 오행의 틀 속으로 분류해 넣음으로써 세계는 음양과 오행의 관계 구조로 체계화되고,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음양과 오행으로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패턴 인식이란 사물이나 현상의 변화 가운데 있는 규칙성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패턴은 규범이 일정한 형식이지 형상이 아니다. 특히 변화 자체를 중시했던 동아시아인들은 기의 운동 속에서 유동하는 세계의 기본적인 패턴을 찾아내었다. 그 운동의 대표적인 패턴은 사계절의 변화에서 나타난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양기가 신장하고 음기가 쇠퇴하며,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양기가 쇠퇴하고 음기가 신장하는 과정이다. 음양기의 파동적인 리듬은 1년을 주기로 하여 순환한다. 이같은 기의 운동 패턴은 1일을 주기로 하는 주야의 변화에서도 관찰되며, 인간의 일생에서도 관찰되는 것이었다. 이런 패턴인식은 ≪周易≫의 64괘, 象數學으로 발전되었다.30)

4) 음양 상응 체계

최초 ‘산의 그늘진 곳과 양지바른 곳’이라는 소박한 의미에서 출발했던 음양 개념은 이후 이로부터 다양한 의미들이 인신되어 세계를 음양으로 해석하기 위한 특징적인 체계를 형성했다. 음양과 오행 상응체계는 상관적 사고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가 된다. 이 중 일부가 의학에도 도입되어 인체 현상을 해석하고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다. 만프레드 포커트(Manfred Porkert)는 이것을 음양과 오행의 ‘상응 체계(systems of correspondence)’라고 불렀다. 포커트가 음양의 상응체계로 정리한 것은 Table 2와 같다.

Table 2.Systems of Correspondence, Yin and Yang31)

5) 음양의 속성

이런 모든 논의들을 종합할 때 음양에는 全一, 待對, 統一, 分化, 消長의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이 중 全一, 待對, 統一은 음양의 자연 사물을 규정하는 속성을 나타낸 것이고, 分化, 消長은 음양의 발전과 변화의 속성을 나타낸 것이다.32)

全一은 ‘온전한 하나’라는 의미다. 음양이란 全一의 양면으로서 全一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음양은 全一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으로 全一과 음양은 ‘一而二요 二而一’인 관계에 있다. 이는 다음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한다.33)

하나는, 先天과 後天의 관계다. 이것은 ‘全一(太極)은 음양을 낳는다(太極生兩儀)’로 표현된다. 즉, 全一(太極)은 先天으로서 動하여 後天的 음양 현상을 낳는 근원이 된다. 全一은 先天이며 현상화되지 않은 단계로서 ‘無聲無臭’하여 우리의 감각, 지각으로 포착할 수 없다. 반면에 음양은 後天이며, 현상화 이후 단계로서, 體가 있고 象이 있어 우리의 감각과 지각으로 포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음양을 ‘體와 象을 가진 것들의 조상’이라고 하였다.(一而二)34)

다른 하나는 본체와 현상의 관계다. 이것은 ‘全一(太極)은 곧 음양이다(太極便是陰陽)’로 표현된다. 이 경우 全一과 음양의 관계는 선후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존재론적 단계에 속하는 동시적이고, 동질적인 관계이다. 즉, 음양은 全一이라는 일원적 본체의 양면적 현상이고, 全一은 음양현상의 통일성을 표현하는 언표가 된다. 全一로부터 분화된 음양은 다시 통합되어 全一로 귀속된다(二而一).

待對는 相對라는 개념으로는 그 의미를 다 드러낼 수 없는 용어다. 음과 양의 관계는 이분법적이고, 대립과 모순의 관계가 전부가 아니라, 서로 대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서로 의존하며, 또 相反相成하는 待對的 관계가 중심이 된다. 이것은 음과 양이 全一의 양면으로서 相補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統一은 음과 양이 相互同根인 하나의 통일체가 됨을 말한다. 분화된 음양은 서로 상대적이면서 대립적인 속성을 가지지만 이는 다시 全一의 양면으로 집약되어 통일성을 갖는다.35)

分化는 음양 속에 다시 음양이 있어 음이 다시 음양으로 나누어지고 양도 다시 음양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말한다. 즉, 음양의 구분은 편차의 분석에 의한 것으로 음과 양 속에는 다시 음양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속성이 있다.36) 分化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음양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消長은 음양의 상대적 관계가 정지하여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進退消長하는 역동적 과정 속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3. 한의학의 음양론적 인체관

1) 한의학의 음양론적 대상관

한의학에서는 음양론을 도입하여 인체가 나타내는 생명현상을 포착하고 이를 임상에서 응용해 왔다. 음양론은 본래 사물과 현상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대립적인 두 측면을 음과 양으로 명명하고, 음과 양의 待對 관계를 통해 사물과 현상을 파악하고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이 때 음과 양의 개념은 각각을 정의함에 있어 서로 독립적으로 정의될 수 없고 개념적으로 의존해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다.

음양론을 통해 인체 생명현상을 인식한다고 하는 것은 음양론이 함축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받아들이고 이를 인체에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음양론적 대상관(인체관)은 한의학적 대상관 그 자체이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全一觀에 의해 인체를 하나의 全一生命體로 보며(전체성을 중시),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은 하나의 생명(全一生命) 아래 통일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생명현상은 음양 현상으로 파악되며, 음양현상은 全一生命을 전제로 하는 全一生命의 양면적 현상으로 인식된다.

둘째, 항동관에 의해 인체를 고정 불변한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의 과정(process)적 존재로 본다. 따라서 인체의 모든 현상은 인체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동적 현상이며, 음양론은 이들 동적 현상을 음양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인체가 나타내는 현상은 음기와 양기가 상호작용하여 동적 평형을 목표로 끊임없이 消長, 盛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셋째, 조화와 평형의 관점에서 인체를 바라보기 때문에 인체 현상을 음양의 동태적 평형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인체 생리현상은 음양의 동태적 평형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질병현상은 동태적 평형이 깨졌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全一生命體에서 ‘全一生命’ 개념이 조회하는 실체는 우리의 제한된 언어로 한정될 수 없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가 모두 부분적인 것으로서 全一을 인식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37)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全一生命’ 개념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것은 全一生命體가 발현하는 현상을 통해서다.38) 우리는 전체성 논리인 ‘一而二, 二而一’인 음양 待對形式에 의해 현상에 접근함으로써 생명의 전체성을 손상시키지 않고 온전히 인식할 수 있다.39) 음양은 ‘全一’生命體로서 인체가 나타내는 ‘생명’현상에 대해 그 全一性을 손상시키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動靜, 寒熱, 形氣, 燥濕, 氣血과 같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음양적 개념들을 인체에 적용하여 全一生命을 탐구한다. 그리고 이들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생명’현상 전체를 파악할 수도, 또 설명할 수도 없기에 우리는 다양한 음양적 개념들을 동원하고 이들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전체 ‘생명’에 접근한다.

2) 음양론적 관점에서 본 인체 시스템40)

한의학에서 인체는 神機氣立之物로 정의된다. 여기서 神機란 인체내에서 자발적으로 대사를 일으킬 수 있는 생명(神)의 기틀(機)을 의미하며, 氣立이란 외부환경에 뿌리를 둔 것으로서 外氣의 변화에 상응하여 일어나는 인체의 변화를 의미한다.41) 인체는 神機氣立之物로 이런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즉, 인체는 환경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자발적으로 대사를 영위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神機之物)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주 전체에 종속되어 외부환경 변화에 순응하여 생명을 영위해야 하는 존재(氣立之物)다. 인체가 氣立之物이기도 하다는 것은 인체가 자연계의 造化之氣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서 자연계에 순응하여 그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개방된 개체라는 것을 의미한다.42)

Fig. 1.The human body system seen from the Yin Yang point of view.

인체는 음, 양기의 升降出入으로 요약되는 氣化과정을 통해생명을 영위한다. 升降出入은 유한한 공간(그릇)을 차지하고 있는 개체에 적용되는 규율이다. 그릇이 없으면 升降出入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生化의 변화가 일어나는 집이다.43) 出入이란 인체 生長壯老已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우주에 있어서는 만물이 생성 소멸하는 것이다. 出入은 인체에서는 인체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인체로 들어가는 것은 음식물의 섭취, 공기의 흡입이며, 나오는 것은 대소변, 분비물 등의 노폐물이다. 出入을 통해 생명의 기틀인 神機가 보존되고 出入이 廢하면 생명의 기틀이 化滅된다. 升降이란 陰, 陽氣의 升降으로 生長化收藏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자연계에서는 음양기의 升降으로 寒熱이 교대되고44), 이에 따라 5계절의 특징적인 작용인 生長化收藏의 변화가 땅에서 일어난다. 인체에서는 외부환경의 변화에 상응하여 인체 내 음양기의 升降이 이루어지고 이는 인체 내 열의 생산과 방산 현상으로 표현된다. 인체 내 음양기의 升降은 脾胃, 心腎, 肝肺가 짝이 되어 일어나는 臟腑氣의 升降45)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를 통해 인체 오장의 生長化收藏 생리작용이 정상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臟腑氣의 升降은 인체 寒熱 변화로 드러난다. 외부환경의 변화와 상응하여 인체 氣의 升降이 이루어짐으로써 氣立이 보존되고 升降이 멈추면 生化작용도 끊어져 氣立이 위태롭게 된다.46)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자극-대사-반응의 관점에서 살필 수 있다. 윤길영은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대사과정을 음, 양 두 세력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면서 이를 음양대사라고 이름 붙였다.47) 즉, “생명현상은 자극-대사-반응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계기하는 현상이니, 대사와 생명현상은 표리적 관계”48)에 있다. “대사과정에서 陽化氣가 일어나고 陰成形이 일어나는데 陽化氣를 일으키는 세력을 양세력(陽氣)이라 하고 陰成形을 일으키는 세력을 음세력(陰氣)라 한다. 陽化氣는 생체에너지 즉, 氣를 일으키는 것이고, 陰成形은 생체물질 즉, 血을 형성하는 것이다. 陽化氣에는 氣化는 물론이고, 熱化, 動化가 일어나고, 陰成形에는 形化 즉, 생체물질의 형성과 寒化, 靜化가 일어난다.”49) 陰, 陽勢力(陰,陽氣)은 관여하는 인자에 따라 陽勢力이 우세하기도 하고, 陰勢力이 우세하기도 하면서 유동적으로 음양평형을 유지한다.50) 이처럼 인체 대사과정을 음기와 양기의 동태적 평형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설명하려는 것이 음양대사이다.

Fig. 2.The Yin-Yang metabolism of human body.

음양기의 升降에 따른 외부환경의 변화와 에너지와 물질의 인체 出入은 인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음양대사에 영향을 준다. 음기와 양기가 내외부환경의 자극을 받아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동태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과정이 인체의 정상적인 생명활동인데 그 결과(병리적 현상 포함)는 寒熱, 虛實 등 음양 현상으로 관찰된다. 이상은 음양적 관점에서 살핀 인체 시스템의 작동 원리다.

3) 인체 음양현상의 중요한 관찰 지표들

(1) 形氣-肥瘦,氣血

모든 대사는 우리 몸을 기반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形은 대사의 주체(體)이고 氣는 그 작용(用)이다. 陽化氣, 陰成形하므로 만약 인체에 양세력만 있으면 인체는 다 氣化하여 소멸해 버리고 말 것이고, 음세력만 있으면 냉각되어 물질만 남고 말 것이다.51) 그러므로 양세력과 음세력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그 결과로서 인체 形(형체)과 氣도 균형을 이룬다. 음세력이 우세하면 형체가 肥胖하고 氣는 쇠하게 되며(形胖氣虛), 양세력이 우세하면 氣化가 활발해지고 형체는 消瘦하게 된다(形瘦陰虛). 또 이것은 氣血의 관점에서 살필 수도 있다. 양세력과 음세력의 유동에 따라 氣(생체에너지)와 血(생체물질)의 성쇠와 생성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形氣, 肥瘦, 氣血 등은 음양대사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들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2) 八綱-陰陽,寒熱,虛實,表裏

陽勢力이 異常亢進하면 身熱하고, 陰勢力이 異常亢進하면 身寒하다.52) 虛證은 인체 내의 물질이나 氣가 부족해서 일어난 병증이고, 實證은 인체 외부의 인자가 가세해서 인체 내 음양대사의 실조를 일으킨 것이다. 인체의 병리 현상을 陰陽虛實의 관점에서 분류하면, 외부인자가 가세하여 인체 내 양세력이 異常亢進된 陽實證, 인체 내 양세력이 부족하여 異常沈衰된 陽虛證, 외부인자가 가세하여 인체 내 음세력이 異常亢進된 陰實證, 인체 내 물질이 부족하여 음세력이 異常沈衰된 陰虛證으로 구분할 수 있다.

陰陽虛實證은 각각 인체 내외에서 寒熱현상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데, 陽實證은 外熱, 陽虛證은 外寒, 陰實證은 內寒, 陰虛證은 內熱을 나타낸다.53) 여기서 內外는 表裏와 치환될 수 있는 개념이다. 인체의 寒熱현상은 인체 음양세력의 전체적 우열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현상적 지표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八綱의 음양은 寒熱, 虛實, 表裏의 총강으로 寒證, 虛證, 裏證은 음이고, 熱證, 實證, 表證은 양이다.54)

Fig. 3.The Eight Principles of diagnosis in the Korean Medicine.

(3) 六氣-寒熱, 燥濕, 風火

六氣란 일년의 기후변화를 요약한 것으로 각 계절에 따라 음양기가 升降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黃帝內經>에서 六氣는 종종 寒暑로 요약되는데, 寒暑란 곧 寒熱로 열의 편차를 말한다.55) 이것은 六氣, 즉 각 계절의 기후변화의 핵심이 열에 있으며, 실제로도 태양과 지구의 거리에 따라 나타나는 열의 편차에 의해 각 계절의 특징적인 기후현상이 생겨난다. <醫門棒喝>에서는 六氣현상이 寒熱(火)이 중심이 되는 음양 변화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56)

인체와 우주의 상응(天人相應)론에 따라 한의학에서는 각 계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기후현상인 六氣 개념을 도입하여 인체 생명현상을 인식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즉, 음양기의 升降에 따라 각 계절의 특징적인 기후현상인 六氣가 나타나듯이, 인체 내에서 음양기의 升降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들도 六氣的 현상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것을 內部六氣라고 한다. 外部六氣가 인체 외부환경(외환경)을 이룬다면 內部六氣는 인체 내부환경(내환경)을 형성한다. 風寒暑(熱)濕燥火 육기는 寒熱(온도), 燥濕(습도), 風火(에너지)로 분류되는데 김완희는 이를 인체 오장시스템(유기능체계)이 가동되는데 영향을 미치는 환경자극요소, 또는 인체내 대사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요소로 보았다.57) 음양기의 升降은 앞서 말했듯이 臟腑 차원에서는 心腎, 肝肺, 脾胃를 중심으로 하는 臟腑氣의 升降으로 인식되며 위의 六氣현상은 臟腑의 기능 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요약한 것이기도 하다.

(4) 部位-上下, 左右, 前後, 內外, 表裏

上下, 左右, 前後, 內外, 表裏는 한의학에서 각각 인체 생명현상을 인식하는 음양 좌표로 활용된다. 이들 부위는 단순히 위치만을 표시하는 개념이 아니며 음양적 속성이 부여되어 있다.

上은 양이고 下는 음이다. 上下는 각기 天地와 대응한다. 天은 上에 있고, 地는 下에 있다. 그러므로 上에 있는 天은 양이고 下에 있는 地는 음이다. 天氣와 地氣가 교류함으로써, 즉 음양기의 升降에 의해 모든 변화가 일어난다.58) 地氣(下)는 左를 돌아 상승하고 天氣(上)는 右를 돌아 하강한다.59) 따라서 左右를 음양의 道路라고 한다.60) 이러한 음양기의 升降은 춘하추동 사계절의 시간변화에서 나타나는 음양기의 升降과 동일한 패턴을 갖는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는 시간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음양변화를 종종 공간에 투영하여 인식하기도 한다. 上下左右에 음양 속성을 부여하면 上은 양(陽中之陽), 下는 음(陰中之陰), 左는 陰中之陽, 右는 陽中之陰이 된다. 上下左右의 수직평면은 前後左右의 수평평면과도 대응될 수 있는데 南面하여 방위를 정하므로 前面은 南, 後面은 北, 左는 東, 右는 西가 된다. 그러므로 上-前-南은 양(陽中之陽), 下-後-北은 음(陰中之陰), 左-東은 陰中之陽, 右-西는 陽中之陰이 된다.

이처럼 위치에는 음양 속성이 부여되어 음양상응체계 속으로 편입되고 다른 음양 지표들과 상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左血右氣, 左肝右肺는 해부학적 위치를 표시한 것이 아니다. 左右에 부여된 음양적 속성을 통해 氣血, 肝肺의 음양적 속성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血, 肝은 陰中之陽, 氣, 肺는 陽中之陰의 음양 속성을 가지며 이것은 氣血, 肝肺의 생리적 특성과 연결된다.

4. 한의학에 적용된 음양개념의 은유적 이해

한의학에서는 음양론에 입각하여 인체 현상을 해석하고 체계를 세웠다. 그러므로 한의학의 인체관에는 음양상응체계에 기초한 상관적 사고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현대인들은 음양론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대적 분위기와 상관적 사고가 가져다주는 생소함 때문에 음양적 사고를 쉽게 비합리적인 사고로 돌려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한의학 이론도 점점 설명력이 약화되고 있다. 한의학이 미래에도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음양적 사고가 결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며 현대에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현대인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한의학의 언어가 합리적이며, 과학적 언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필자는 근래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은유이론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우리들의 일상적인 사고 자체가 은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61)는 레이코프와 존슨의 은유 이론은 충분히 음미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과학 분야나 의학 분야에서도 은유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브라운은 은유적 추론(metaphorical reasoning)이 과학자들이 실험을 디자인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이론과 모델을 만들어내고, 그들의 연구결과를 기술하는 모든 과정에서 핵심적이라고 주장한다. 은유는 과학적 연구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는데 기여하고, 심지어 이론의 구성에 필수적인 개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62)

필자는 한의학에서 음양개념을 도입하여 인체현상을 해석한 것이 은유적 사고의 일종이라고 본다. 따라서 레이코프와 존슨의 개념적 은유 이론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한의학의 음양론적 인체관을 은유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1) 개념적 은유 이론

(1) 개념적 은유

전통적으로 은유는 문학 작품에서 사용되는 언어적 장식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근래 레이코프와 존슨에 의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관점이 되는 일상적 개념체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63) 우리들의 사고 자체가 은유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개념은 우리가 지각하는 것,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 등을 구조화 한다.64) 개념적 은유란 하나의 개념영역이 다른 개념영역(은유적개념)에 의해 조직화되어 이해되는 것을 말한다. 개념적 은유에서는 은유가 도출되는 개념영역을 근원영역(source domain)이라고 하고 은유가 적용되는 개념영역을 목표영역(target domain)이라고 한다. 이 두 영역은 각 영역에 속하는 요소들 사이의 대응관계(correspondence)나 寫像(mapping)을 통해 연결된다.65) 따라서 개념적 은유는 목표영역에 속하는 개념영역이 근원영역의 개념, 즉 은유적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하위 범주들에 의해 조직화되고 구조화되는 것을 말한다.

(2) 개념적 은유의 인지적 기능에 따른 분류: 구조적 은유, 존재론적 은유, 지향적 은유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는데 은유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은유는 구조적 은유(structural metaphors), 존재론적 은유(ontological metaphors), 지향적 은유(orientational metaphors)의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66)

은유의 본질은 한 종류의 사물을 다른 종류의 사물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67) 즉, 우리는 은유를 통해 근원영역의 경험을 표적영역에 투사함으로써 근원영역의 관점에서 표적영역을 새롭게 이해하고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68)

구조적 은유는 표적영역의 개념이 근원영역의 관점에서 구조화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논쟁은 전쟁이다’라는 은유는 전쟁이라는 근원영역의 개념을 표적영역에 투사하여 논쟁을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보게하고 또 논쟁을 전쟁 개념의 하위범주들에 의해 구조화한다.69)

존재론적 은유는 우리의 추상적인 경험들(사건, 활동, 정서, 생각 등)을 개체 또는 물질로 간주하여 마치 이것들이 물리적 특성을 가진 것처럼 개념화하여 사고하게 하는 은유를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추상적인 경험들을 물리적인 대상인 것처럼 지시하고(referring), 범주화하고, 분류하고, 양화(quantifying) 할 수 있다.70) 구조적 은유가 한 개념을 다른 개념의 관점에서 은유적으로 구조화하는 것이라면 지향적 은유는 ‘한 전체 개념 체계를 다른 전체 개념체계와 관련하여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71) 이러한 은유의 대부분은 위-아래, 안-밖, 앞-뒤, 접촉-분리, 깊은-얕음, 중심-주변 등 공간적 지향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지향적 은유라고 부른다.72) 지향적 은유는 어떤 개념에 공간적 지향성(방향성)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행복은 위(Happy is up)’라는 은유는 ‘행복은 상승(up)하는 것이고 슬픔은 가라앉는(down) 것’이라는 공간성과 방향성을 부여한다.73) 다양한 종류의 지향적 은유가 우리의 일상 언어와 사고 속에서 관찰된다.

(3) 개념적 은유의 기반; 신체화된 마음, 영상도식, 은유적 투사

그렇다면 이같은 개념적 은유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레이코프와 존슨은 체험주의(experientialism)라고 부르는 관점에 기초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들의 설명에서 중요한 개념은 ‘영상도식(image schema)’과 ‘은유적 투사’ 또는 ‘은유적 寫像(metaphorical projection or mapping)’이다.74) 도식(schema) 개념은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나온 것으로서 일종의 ‘경험을 부어 넣는 마음의 주물’과 같은 것을 말한다. 즉, 심리학이나 인지과학에서 도식은 ‘정보를 체제화하고 해석하는 인지적 개념 또는 틀’로서, 우리들의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조직화하는 구조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들에 맞추어 기존 도식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도식을 구성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 과정을 동화(assimilation), 조절(accommodation), 평형화(equilibrium)의 과정으로 설명한다.75)

존슨은 우리 경험을 신체적/물리적 층위와 정신적/추상적 층위로 구분하고, 정신적/추상적 층위의 경험이 신체적/물리적 층위의 경험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이것에 의해 강력하게 제약된다고 주장한다.76) 영상도식들은 신체적/물리적 층위의 경험에 기반하여 구성되며, 신체적 활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발생한 영상도식을 다양한 대상에 은유적으로 투사함으로써 신체적/물리적 층위의 경험이 정신적/추상적 층위의 경험으로 확장되어 간다고 본다.77) 은유적 사상 내지 투사가 신체적/물리적 층위의 경험이 정신적/추상적 층위의 경험으로 확장되어가는 중심적 방식이라는 것이다.78) 존슨은 영상도식의 예로 그릇(container), 힘(force), 균형(balance), 경로(path), 주기(cycle), 부분-전체(part-whole), 중심-주변(center-periphery) 등을 들고 있다.79)

2) 한의학의 음양론적 인체관과 은유

(1) 한의학의 인체관과 음양 은유: ‘인체는 음양’

한의학에서는 ‘인체는 음양’이라는 은유에 의해 인체 생명현상을 음양현상으로 규정하고, 음양에 함축되어 있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관점, 속성들을 중심으로 인체 생명현상을 조직하고 구조화하고 있다.

① 인체에 대한 규정: ‘인체는 음과 양의 待對관계로 인식되는 全一생명체’, ‘인체는 ‘陰平陽秘’의 음양 동태평형을 목표로 작동하는 생명시스템’

② 인체 생명현상: ‘인체 모든 생명현상은 음양현상’, ‘인체질병은 음양 동태평형의 차질현상’, ‘생명현상을 일으키는 양대 세력은 음,양기’, ‘생명현상은 양기(陽化氣), 음기(陰成形) 사이의 消長進退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 ‘인체 생명의 근원은 元陰,元陽’, ‘인체 음양 현상들-‘寒熱’, ‘燥濕’, ‘風火’, ‘淸濁’, ‘浮沈’, ‘遲數’, ‘虛實’ 등’

③ 인체의 구성: ‘인체는 음양상응체계’, ‘인체는 음양적 구조물(臟腑, 氣血, 經絡, 上下, 表裏, 內外, 左右)’, ‘인체는 全一생명체의 생존을 위해 모든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통일체’

④ 인체 외부환경: ‘사계절의 기후변화(六氣)는 음양升降의 결과’, ‘인체 외부환경도 음양상응체계’, ‘외부환경과 인체의 상응(天人相應, 感應)’

⑤ 인체 생리기능의 패턴: ‘음양기의 升降出入’, ‘生化極變’, ‘水升火降’, ‘발산과 수렴’, ‘升淸降濁’ 등

(2) 한의학의 음양론적 인체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도식(schema)’들

① ‘그릇(container)’: 이것은 포함과 경계성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존슨은 “포함이나 경계성과 마주치는 것은 가장 흔한 신체적 경험 중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 몸이 어떤 물건들(음식, 물, 공기)을 집어넣고 다른 것들(음식과 물의 찌꺼기, 공기, 혈액 등)을 유출하는 삼차원의 그릇이라는 사실을 친숙하게 알고 있다. 우리는 환경,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물리적 포함을 경험한다.”80)“안-밖 지향성(in-out orientation)의 체험적 근거는 바로 공간적 경계성의 경험이다”81)라고 하여 ‘그릇도식’이 우리의 신체적 경험에서 생겨나며 ‘물리적 포함’이나 ‘안-밖 지향성’과 연결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릇도식’은 한의학 인체관의 중심이 되는 도식이다.82) 존슨에 따르면 포함의 경험은 전형적으로 외적 힘으로부터의 방어와 그에 대한 저항을 포함한다. 그리고 포함은 그릇 안의 힘을 제한하고 제약한다.83) 한의학의 ‘表裏’,‘內外’,‘出入’은 ‘안-밖 지향성’과 연결되어 있는 은유적 개념이다.

② ‘힘(force)’: 힘이라는 도식에 포함되어 있는 ‘함축(entailment)’은 다음과 같다. a.힘은 항상 상호작용을 통해 경험된다, b.힘은 벡터 성질, 즉 방향성을 갖는다, c.힘은 경로를 따라 운동하는 운동 경로가 있다, d.힘에는 기원 또는 원천이 있으며 방향성이 있기 때문에 행위자는 그 힘이 표적을 향하도록 할 수 있다, e.힘에는 능력 또는 세기의 정도가 있다, f.상호작용을 통해 힘을 경험하므로 거기에는 항상 구조 또는 인과성의 연쇄가 개입된다.84)

한의학의 인체관은 인체와 외부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이 전제된다. 그리고 인체 내의 氣는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방향성을 갖는다(升降, 出入).

③ ‘균형(balance)’: 균형에는 a.축 균형(axis balance), b.천칭 균형(twin-pan balance), c.평형(equilibrium)이 있다.85) 균형은 균형 잡기라는 우리 몸의 활동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보행을 배우기 전 어린 아이의 일어서기와 같은 활동으로부터 균형을 경험한다.86) 그리고 이것을 다양한 영역에 투사하여 균형이라는 은유를 통해 표적영역을 개념화한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모든 생리적 활동이 균형, 또는 평형을 목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陰平陽秘, 亢害承制, 相生相克 등이 모두 평형과 관련된 개념이다.

④‘경로(path)’: 경로에는 근원 또는 출발점이 있고, 목표 또는 종착점이 있으며, 근원과 목표를 연결하는 행로가 있다. 경로는 목표를 향하기 때문에 방향성이 있을 수 있으며, 시간성이 부여된다.87)

한의학에서 經氣의 순행은 일정한 경로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상정된다. 根結理論 또한 경로도식과 관련이 있다.

⑤ ‘주기(cycle)’: 우리는 신체경험을 통해 다양한 주기를 경험한다. 심장 박동, 호흡, 소화, 여성의 월경, 수면, 혈액순환 등이다. 또 우리는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이 주기적 과정에 묶여 있는 것으로 경험한다. 주야, 삭망, 계절, 삶의 행로(탄생과 죽음), 식물과 동물의 성장 단계, 천체의 운행 등이 그것이다.88) 가장 기본적으로 주기는 시간적 주기이다. 주기는 어떤 초기상태에서 출발하여 다시 시작했던 곳에서 끝남으로써 반복적인 주기 패턴을 새롭게 시작한다. 그러므로 가장 단순한 주기 도식은 원 운동으로 표현된다. 주기는 원 상태로의 회귀를 표현한다.89) 그러나 주기를 원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주기에서 흔하게 경험하는, 특히 정점(climax)이 있는 구조를 포함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 정점 구조는 주기적인 ‘상승’과 ‘하강’을 보이는 사인 곡선(sign wave)에 의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될 것이다.90)

한의학에서는 주기(cycle)도식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도식을 자연계와 인체의 다양한 현상에 투사하여 구조화하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계절의 변화나 천체의 운동 속에서 규칙적인 패턴을 찾아내어 음양升降이라는 주기적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인체 생리현상도 이와 상응하여 변화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⑥ ‘부분-전체(part-whole)’: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하는 것은 환유(metonymy)에 속한다.91) 한의학에서는 ‘人身은 小宇宙’라는 일종의 부분-전체 도식을 통해 인체의 해부학적 형태나 생리기능을 해석했다. 최근에는 耳鍼, 頭鍼, 足鍼 등 分區鍼法과 중국의 全息理論에서 이런 도식을 찾아볼 수 있다.

⑦ ‘중심-주변(center-periphery)’: 이 도식을 통해 원근이 규정된다. 또 이 도식이 그릇도식과 결합하면 중심을 안쪽으로 경험하며 이것에 상대적으로 바깥쪽을 정의하게 된다. 이렇게 생겨난 안-밖 지향성은 다양한 추상적 대상으로 확장되어 주관-대상, 자기-타인 등의 구분을 낳는다.92) 한의학에서 중심-주변 도식은 ‘表裏’, ‘內外’의 음양적 인식과 연결된다.

(3) 한의학에서 음양 은유의 의미와 과제

한의학의 음양론적 인체관에는 개념적 은유 이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은유의 특징들이 많이 발견된다. 우선 한의학에서는 음양개념에 의해 인체생명현상이라는 목표영역을 은유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음양 은유에 의해 생명현상은 음양현상으로 인식되고, 음양의 속성과 관점 등 음양론의 하위 범주들에 의해 생명현상이 체계적으로 조직된다. 이것은 구조적 은유의 기능과 부합하는 것이다. 또 음양론적 인체관에는 다양한 지향적 은유가 나타나고 있다. 위-아래(上下), 안-밖(表裏), 앞-뒤(前後), 좌-우, 접촉-분리, 깊음-얕음(深淺), 중심-주변(遠近,標本) 등 다양한 공간적 지향성들이 음양상응체계를 기반으로 여타의 개념들과 연결되어 신체적/물리적 층위뿐만 아니라 정신적/추상적 층위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 寒熱은 上下, 表裏 등의 공간적 지향성을 갖는다. 열은 위로 상승하고, 인체의 중심부에서 체표 쪽으로 발산되는 성질을 갖는다. 또 불(火)이 위로 타오르듯이 사람의 감정적인 火는 氣를 상승하게 한다. 天이 위에 있어 양이고 地가 아래에 있어 음이 되듯이 父(男)는 위(양)이고 母(女)는 아래(음)다. 시간 또한 공간 속에 투영되어 升降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한의학에서 공간화 은유(지향적 은유)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면 한의학의 인체관에서 활용되고 있는 음양 은유는 방법적 가치가 있는 것인가? 레이코프와 존슨은 근원영역의 개념에 의한 은유적 구조화가 통상 목표영역의 특정 측면을 부각(highlight)하고 여타 측면은 은폐(hide)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93) 음양 은유도 마찬가지다. 음양 은유에 의해 인체 생명현상 중 부각되는 측면도 있고 은폐되는 측면도 있다. 음양은유에 의해 부각되는 측면은 인체 생명의 전체성, 외부환경과의 인체의 긴밀한 관계이고, 그리고 생명현상을 음양기의 조화와 평형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만일 음양 은유에 의해 부각되는 측면이 의학적으로 가치가 있거나 기존의 다른 의학체계가 보지 못하는 것이라면 음양 은유는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의학분야에서는 시스템 과학, 네트워크 과학 같은 환원론적 방법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일종의 전체론적 방법들이 떠오르는 새 분야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음양 은유에 의해 구성된 한의학은 이미 수천 년 동안 의학분야에서 인체 생리현상과 질병현상에 대해 거시적이고 전체론적인 관찰을 진행해 왔으며 이를 기초로한 많은 치료 경험들을 축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음양론적 방법을 현대적 방법으로 승화, 발전시킬 수 있다면 한의학의 고유한 치료경험들도 사장되지 않고 미래에도 의미있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의학 이론 용어들을 과학적 은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연구하는 것이 한의학 이론을 현대적,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결 론

한의학에서는 음양론에 입각하여 인체생명현상을 인식하고 의학 이론의 체계를 세우고 있다. 음양론은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독특한 세계관, 사고방식, 문화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전통시대 전체를 지배했던 사상이었다. 그러나 근, 현대시기에 접어 들어 동아시아의 전통문화가 쇠퇴하고 과학문화가 지배하게 되면서 음양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커졌고, 이에 따라 한의학에 대한 불신도 높아졌다.

과학문화에 적응하여 한의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음양론에 대한 새로운 역할부여와 자리매김을 필요로 한다. 과학적 한의학을 지향하는 현대 한의학에서 음양론의 바람직한 역할은 의학적 방법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것은 음양론이 의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의학적 방법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음양론은 전일관, 항동관, 평형관 등 동아시아인들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며, 음양론 속에는 이런 관점들이 녹아 들어 있다. 그러므로 음양론은 사물과 현상의 전체성, 동태성, 관계성을 중시한다. 또 고대인들이 음양적 관점에서 세계를 효율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발전시킨 것은 분류와 패턴인식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음양으로 분류하여 음양상응체계를 구성했고, 다양한 변화들 속에서 규칙성을 찾아내어 이를 음양 변화의 패턴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상관적 우주론의 관점에서 同類相動, 同氣相感의 상관적 사고를 통해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해석했다.

이런 독특한 음양론적 사고방식과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음양적 방법은 한의학에 도입되어 의학적 방법이 되었다. 인체는 음양 시스템으로 이해되었고, 인체 생명현상은 음양현상으로 인식되었다. 인체는 神機氣立之物로서 스스로 외부환경에 대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환경에 순응하여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升降出入의 과정을 통해 외부환경의 영향 속에서 생명을 유지한다. 인체 내에서는 내외의 자극을 받아 양화기, 음성형의 음양대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서 생명현상을 발현한다. 한의학에서 생명현상은 음양현상으로 인식되었기에 다양한 음양적 개념을 동원하여 이 현상을 포착하고 있다.

한의학의 인체관에 적용된 음양은 일종의 은유다. 한의학의 음양론적 인체관에는 개념적 은유 이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은유의 특징들이 많이 발견된다. 우선 한의학에서는 음양개념에 의해 인체생명현상이라는 목표영역을 은유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음양 은유에 의해 생명현상은 음양현상으로 인식되고, 음양의 속성과 관점 등 하위 범주들에 의해 생명현상이 체계적으로 조직된다. 그리고 개념적 은유 이론에서 말하는 지향적 은유(공간화 은유)도 많이 관찰된다. 음양을 은유로 이해하는 것은 음양개념을 합리적인 언어 또는 방법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좋은 방편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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