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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search on Buncheong Jar with dragon and cloud patterns(龍樽) in the early the Joseon Dynasty with priority given to Buncheongsagisanggamunryongmunho, National treasures

조선 초기 용준(龍樽), 분청사기 상감 운룡문 호의 특징과 성격

  • Received : 2021.08.17
  • Accepted : 2022.01.20
  • Published : 2022.03.30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production and use, development of Buncheongsagisang-gamunryongmunho, focusing on Buncheong Jar with dragon and cloud patterns(龍樽) in the early the Joseon Dynasty. The Buncheong Jar with dragon and cloud patterns(龍樽) which is the size of a large bottle as high as 50cm is a form of stability to have gorgeous decorativeness with the inlaid and stamped pattern. The Buncheongsagisanggamunryongmunho is the Buncheong Jar with dragon and cloud patterns(龍樽) used for Flower Vessels(花樽) at Royal Ritual in King Sejong(世宗) era. In the 1420s and 1430s, made in Premium ceramic factory of Sangju-mok, it is Blue and white porcelain in reference to dragon and cloud patterns in the Yuan and Ming Dynasties in aspects of shapes and patterns, to the inlaid Celadon in the period of Late Goryeo Dynasty in aspects of patterns, and to Joseon porcelain in aspects of shapes and decoration techniques. The Joseon Royal family found out the appropriateness of the founding of the dynasty and the base for the system of civilization from Ming dynasty, to follow Ming dynasty by choosing white porcelains as the King's vessel. Jars passed down from Emperor Ming served as a standard for Royal Ritual Jars, to use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dragon and cloud patterns as Flower Vessels(花樽) and Liquor Vessels(酒樽) for ages. Consequently, the Buncheong Jar with dragon and cloud patterns(龍樽) as Royal Ritual Jar had been used till 1430's when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dragon and cloud patterns(靑花雲龍白磁酒海) was passed down from Emperor Ming, Xuande Emperor(宣德帝), only to lose its Meaning and Use as the Royal Jar with dragon and cloud patterns(龍樽)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gradually.

본 논문은 조선 초기 용준(龍樽)의 실례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분청사기 상감 운룡문 호에 주목하여 제작과 용도, 그리고 전개양상에 주목한 것이다. 분청사기 상감 운룡문 호는 높이 50cm에 달하는 대형의 입호로 전체적인 기형에서 안정감을 주고, 동체 외면에는 상감 및 인화상감기법으로 시문된 문양으로 유려한 장식성을 갖추었다. 입호의 기형과 문양 소재, 제작수법은 중국 원·명대 자기를 연상시켰고, 세종연간에 제작된 왕실 자기로 그 가치가 인정되었다. 다만, 조선 초기의 도자사 연구에 있어 우수한 자기 제작수준을 보여주는 실례로 단편적인 기술 외에 생산유적이나 사용실태, 소멸 등 일련의 전개과정에 대한 논의가 미진하였고, 이에 따라 조선 초기 왕실 자기로서의 성격과 의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였다. 분청사기 상감 운룡문 호는 세종연간 왕실 행사의 화준으로 사용된 용준이었다. 1420~1430년대라는 한정된 기간상주목 일대 특정 상품자기소에서 제작된 용준으로서 원·명대 백자 청화 운룡문 호와 기형 및 문양 구성에서의 친연성뿐만 아니라 문양면에서 고려청자의 전통성, 기형 및 문양면에서 조선 자기의 시대성을 모두 보여주었다. 조선 왕실은 개국의 당위성과 문물 정비의 근간을 명으로부터 찾았고, 어기 또한 백자 및 청화백자를 선택함으로써 지향대상이 명 황실임을 보여주었다. 왕실 의례에 사용할 용준 역시 명 황실로부터 사여 받은 '청화운룡백자주해'를 기준으로 삼았고, 분청사기가 아닌 백자로 제작된 용준이 오랜 기간 왕실 의례에 화준과 주준으로 사용되었다. 그 결과 조선 초기 왕실에서 화준으로 사용되어온 분청사기 상감 운룡문 호는 명 황실로부터 '청화운룡백자주해'가 전해진 1430년을 기점으로 점차 왕실의 용준으로서 가졌던 의미와 용도를 백자 청화 운룡문 호에 일임하였고, 제작과 사용의 중단으로 이어졌다.

Key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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